사회과학에서 유통되는 무수한 개념들 가운데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있다. 한국에서는 일상적으로 사회주의와 같은 뭔가 거대한 정치 이념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지만, 사실은 그게 다가 아니다. 그럴싸하게 정의를 하자면, 이데올로기란 '세계의 정상적 운동과 사물의 이상적 상태'를 주제로 하는 담론들의 총체다. 쉽게 말해 "여자는 담배를 피면 안돼"(왜냐하면 그것이 여자라는 존재의 정상적 상태이므로) 따위의 헛소리부터 '역사는 결국 진보한다'(왜냐하면 그것이 세계가 운동하는 정상적 방식이므로) 따위의 신념 모두가 이데올로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끈질김은 그것이 삶의 지혜, 상식,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 따위의 형태로 유통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런 점에서 역사와 사회에 대한 거대 담론들은 오히려 그것의 명약관화한 이데올로기적 성격으로 인해서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적 이데올로기들의 특징 중 하나는 특정한 실천을 기준으로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을 구분지으려는 경향성이다. 즉 이걸 하면 사람이고, 이걸 안 하면 사람도 아니라는 것. 예컨대 중앙아프리카의 열대우림에 사는 피그미 족은 이웃의 마을 흑인들을 완전한 사람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는데, 왜냐하면 예컨대 그들은 성인식을 맞는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하고, 덥고 먼지 가득한 흙집에서 살며, 더러운 물을 식수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흑인들 역시 피그미들을 완전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피그미들은 악령들의 세계인 숲에서 살고, 장례식의 애도 절차를 지킬 줄도 모르며, 성인식 동안에는 몸을 씻으면 안된다는 규칙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원시'사회들에서 '사람'이라는 단어는 오직 그 사회의 구성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정되곤 한다. 어휴 옆 동네 걔들, 걔들은 사람도 아니야, 뭐 이런 식이다.
사람이 사람인 이상 이데올로기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알튀세르가 인간은 이데올로기적 동물이라고 했듯이. 그러나 우리가 오늘 희망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 우리를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세계를 소위 '민주주의적 합리성'에 입각해서 재구축하는 것이다. 즉 더 이상 이걸 하면 사람도 아니야라고 말하는 대신, 아 이건 민주주의적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이런 저런 원칙에 어긋나는 거잖아요라고 말하는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그건 도리가 아니잖아요가 아니라, 아니 왜 제 자유를 침해하세요, 아니 모든 인간은 동등한 거잖아요, 뭐 이런. '사람의 도리'를 내세우는 담화들은 대화를 불가능하게 한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 대화가 불가능하듯. 반면 민주사회의 원칙들 주위를 공전하는 담화들은 사회적 대화와 토론을 가능하게 한다. 이념적 차이에 기반한 대화와 토론은 민주사회의 전진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전제조건이고, 사람의 도리 운운하는 담화들은 따라서 민주사회의 퇴보를 조장하는 이데올로기들이다. 이런 점에서 명박이는 사람도 아니야라는 담화와 김대중이 그러고도 얼굴을 들고 사느냐 나가서 투신해라는 이야기는 정확하게 동일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근데 요즘 맨날 같은 이야기만 하네. 이걸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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