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다녀왔다. 눈 덮인 한라산과 언제 봐도 아름다운 김녕의 바다는 역시나 나를 설레게 하고, 언젠가는 꼭 제주에 한 번 살아봤으면 하는 마음을 다지게 되고. 천천히 흘러간 시간 속에서 새롭게 펼쳐질 일들에 대해 기대감을 갖게 하는 여행이었다.
서른 여섯살의 해, 좀 더 굳건한 마녀가 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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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며칠 진도가 막힌다. 친족이론을 나름대로 정리해야 하는데, 뭐랄까 공력이 딸리는 둣한, 내셔널리그에서 뛰던 선수가 갑자기 챔스 경기를 뛸 때 느낄법한 막막함, 두려움, 무기력함에 부닥친 기분. 그래도 한골 멋지게 넣어주겠어,라고 말하면 멋은 있겠지만, 지성이 수준의 선수도 챔스 10경기 당 한골을 못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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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논문을 쓰면서 내가 하는 일이란 대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의심하고 까는 일이다. 이건 좀 아닌데, 아이고 헛소리, 아주 삽질을 하네. 때로는 또 다른 어떤 이의 입장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비판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내 의견이 제일 낫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심리적으로 유쾌하지만은 않은 작업인데, 한편으로는 내 입장이 그렇게나 똑 부러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입장을 내놓기까지의 지적 과정이 지난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지적, 정서적 전쟁을 치르는 것이고, 그렇기에 나는 공부의 즐거움을 말하는 치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또 의심과 비판). 공부란 무엇보다 고통이다. 공부를 하고 있으면 하는 대로 힘이 들고, 해야 할 공부를 안하고 있으면 또 그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이 공부하는 것 아니면 할 공부를 안하고 딴짓하는 것이니, 나는 대개 상당한 심리적 부하들을 안고 생활을 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 부하가 나와 대화를 하는 유일한 사람인 마녀에게로 어쩔 수 없이 이전된다는 것이다. 마녀는 나에게만은 굉장히 너그러워서 왠만한 것은 다 받아주니까 (사실 마녀 입장에서는 여기서 이짓하고 있는 내가 불쌍하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할테고) 별 생각없이 더 그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 큰 문제는 심리적 부하를 이전하는 방식인데, 딴게 아니라 내가 공부하면서 하는 일, 즉 의심과 비판을 마녀가 하는 말/일들에까지 적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최근 마녀는 나꼼수를 애청한다는 이유로 "말로 다할 수 없는 수모"(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를 겪어야 했고, 친구 중매에 나서려고 하다가 또 내 "원론적인 수준에서 옳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오래 전부터 문제라고 생각해온 일이지만, 매번 반성을 해도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나름 '표어'들도 만들어서 노트북 화면 위에다가 붙여놓기도 했지만, 대화할 때마다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암튼 그렇다. 그러니 앞으로도 마녀는 필시 더럽고 아니꼬운 꼴을 더 당하게 될것이고, 나는 미리 굽신굽신 머리를 조아리며 사전 정비 작업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래도 내가 우리 형님의 고귀한 존재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과 비판도 없다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멘트를 날리면서, 또 이 모든 것이 내 인간적 미성숙함의 발로 아니겠냐는 '절실한' 자기비판과 함께. 우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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